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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IN-JU KANG-> Family's history

2024년 11월 21일 목요일

징기스칸(成吉思汗),패아지근 철목진(孛兒只斤鐵木眞)

 백능(伯能)의 후손 몽고(夢古)




몽고(夢古)는 염제신농(炎帝神農)의 후손인 (伯能) 후손으로 결국 동이족(東夷族)과 같은 뿌리의 민족이다.

염제신농의 후손들은 유독 몽고로 갔고 거기서 몽고민족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처럼 같은 민족을 중국 한나라에서 다른 민족명으로 부르며 이간질 시킨 것인데

몽고와 고구려는 거기에 혹하지 않고 그간 같은 혈맹으로 같이 상부상조하며 이제껏 살아왔다.


동아시아 모든 역사왜곡의 원흉은 헌원에게 붙어있는 헌원계 즉 한나라다.

그 왜곡된 졸사를 그대로 또는 가미하여 왜곡하며 떠들어댄 게 신라범족이다.

우리 동이족 후손들은 이 진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동이족은 생물들을 길들이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특화되어 있는 민족이다.

훈련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타고난다.

그 어떠한 민족도 따라갈 수 없다.


처음 곰을 길들인 것도 동이족이요

양을 길들이고 말을 길들인 것도 동이족이요

소를 길들여 농삿일을 돕게 한 것도 동이족이며

매를 길들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잡은 것도 동이족이다.


징기스칸은 살아생전에 '나는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징기스칸과 같은 지도자가 있었기에 몽고족은 중앙아시아를 휘어잡을 수 있었고,광활한 영토까지 정복하여 미지의 세계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징기스칸은 살아 생 전 720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세계의 인간들을 정복하고 5개의 대륙을 정복해서 몽골인의 위력을 세계만방에 떨쳐보일 거라고 했다.


징기스칸의 그 말이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징기스칸은 야만스럽고 힘이 쎈 장사였기 때문에 난폭한 유목민족을 하나로 단결시켜서 유럽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더 흥미롭다.


서양의 정복자 윌리엄과 같은 사람과 비교해보면 징기스칸은 신분이 높았다.

사실상 몽고의 귀족이었다.

징기스칸(成吉思汗),패아지근 철목진(孛兒只斤鐵木眞)


그 당시 몽고의 신분은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귀족과 평민으로 나뉘어 있었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당연 고위직은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징기스칸은 1167년경에 태어났고 원래 이름은 테무친이었다.

징기스칸의 아버지는 마을의 족장이자 이 전 몽골족의 칸(汗Khan) 즉 통치자의 조카였다.

징기스칸의 태생은 귀족출신이었다.


허나 징기스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9살이란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경쟁부족의 손에 살해당하고 가족 모두 피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숨어지내는 동안 테무친은 신부감을 찾았고 이후 케레이트족 족장의 환심을 사게 된다.


족장은 테무친을 자신의 휘하에 두었지만 새로운 동맹은 위기를 맞는다.

북방의 경쟁부족인 머키트족이 케레이트족의 영토를 습격하였다.

테무친과 그의 동맹부족은 전투에서 머키트족을 물리쳤다.


이렇게 수 많은 전쟁승전을 치루며 테무친은 지위와 권력을 키워가면서 다른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아버지에게 신세를 졌던 부족들과도 친선을 유지했다.


1902년 동쪽의 경쟁부족인 타타르족을 공격했다.

예전에 그가 군대를 이끌던 방식 그대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전까진 약탈을 금지했다.

이런식으로 계속 승리를 이어가면서 테무친은 몽골에서 중요한 인물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눈에는 불(炎)이 있고 얼굴에는 빛이 있다.” -몽골비사

수 많은 별을 가진 하늘도 어지러이 돌고 있었다. 

모든 나라는 우리 몽고를 배반하였다. 

그들은 편안히 침대 위로 들어가 자지도 못하고 서로 노략질했다. 

푸른 풀로 덮인 대지도 구르고 있었다. 

온 나라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편안히 이불 속에 들어가 눕지도 못하고 서로 공격했다. - 몽골비사


단기 197년 서력기원 BCE 2137년, 갑신 단군조선 4세 오사구 단군 재위 원년에 황제의 아우皇弟 오사달을 몽고리한(蒙古里汗)으로 봉하였는데, 혹자는 지금 몽고족이 그 후손이라 말한다. - 환단고기, 단군세기

환단고기와 단군세게가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가히 알 수 있다.


허나 몽고는 염제신농의 15대손인 백능(伯能)의 후손들이 만든 국가로 백능(伯能)의 본명(本名)은 강현저(姜玄氐)이다.

제위를 이은 신농의 후손들은 강성을 그대로 이어나갔고 제위를 잇지 못한 후손들은 성을 바꾸어 자립한 동이족의 원역사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수 많은 성씨와 민족으로 갈려 뻗어나갔던 것이다.

백능의 후손 몽고 그리고 몽고의 칸 테무친 

염제신농의 후손인 단제왕검 때 몽고와 같은 나라로 같이 합쳤던 것임도 알 수 있다.

단제조선의 영역은 몽고를 포함한다는 의미로 엄청난 영토였고 고구려와 몽고는 한 민족 공동체로 서로 상부상조하며 역사를 이어왔던 것이다.


칭기즈칸Chingiz Khan(成吉思汗, 1162~1227)

1162년 - 오논 강 유역 숲에서 탄생, 보르치긴족으로 이름은 테무진(鐵木眞)

1171년 9세 - 아버지 예수게이 사망, 두 엄마와 7형제가 떠돌이 신세가 됨

1178년 16세 - 부르테와 결혼

1189년 27세 - 씨족, 부족 회의인 쿠릴타이를 소집해 칸(汗)의 칭호를 얻음

1196년 34세 - 타타르 원정에 나서 대승을 거둠

1204년 42세 - 몽골 고원 통일

1207년 45세 - 서하(탕구트) 복속시킴

1219년 57세 - 호라즘 원정

1223년 61세 -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 건설 지구의 반을 정복


몽골 전체인구 100만명으로 지구의 반을 정복한 정복자의 대명사

1206년 징기스칸의 몽골통일, 몽골인구 100만명의 변방국가


징기스칸은 한족이 몽고를 흉노로 기록하는 것을 알게된 후 한족을 응징하리라 다짐함

중국으로 진군을 준비하는 동안 

1218년 호라즘영주의 몽골대사관 및 몽골상인 450명을 처형한 사건이 일어남.

이로인해 호라즘복수 및 응징전쟁 시작

한족징벌은 차후로 미뤄지게 됨.


1219년 분노한 징기스칸의 10만 몽골기병이 호라즘을 침공하여 호라즘 30만 최정예 코끼리부대를 단숨에 전멸시키고 수도 우리겐치로 진군,

1220년 10만 몽골기병이 1년만에 45만명의 병력을 지녔던 호라즘제국을 멸망시키고 모두 다 응징함.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함

증오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알 수 있다.


1221년 수보타이,제베,바투가 이끄는 유럽 제 1차 원정군 7만명을 조직함

유럽정복 시작


1223년 제베가 이끄는 몽골군 2만 병력이 7만명의 러시아군을 대패시킴

1227년 4년동안 러시아와 흑해주변을 휩쓸던 제베의 부대 징기스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몽골로 회군함.

1236년 9년 후 오고타이가 징기스칸의 뒤를 이어 칸으로 제위(帝位)

          바투의 제2차 유럽원정군 10만명 유럽정복 다시 시작

          동년 러시아 키예프주변 도시들을 기습하여 전원 복속시킴


1240년 4년 후 바투군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와 키예프 정복함,러시아는 몽골에 귀속됨.

이 때부터 몽고와 러시아(루스족)의 혼혈이 시작됨.

1241년 몽골기병 6만명의 헝가리 침공, 헝가리 벨라 4세가 이끄는 연합기사단 12만명을 궤멸시키고 수도 부다페스트로 입성,헝가리는 동이족의 분파 아틸라가 세운 나라지만 몽고의 식민지가 됨.


동년 로마교황청 긴급회의 소집

독일황제 프리드리히 2세를 주축으로 유럽연합군 결성

당시 크르드족에 시달리던 교황은 쿠르드족을 궤멸시키는 몽골기병들을 하늘이 보낸 천사의 군대인줄 알았다.

실은 심판 응징의 군대였던 것이다.


1241년 동년 리그니츠의 3만 몽골기병에게 유럽 최정예 튜튼 기사단 3천 및 연합군 2만 3천명 모조리 전멸됨.

1242년 동유럽을 무너트림, 남쪽의 바투의 몽골원정군이 중부유럽의 주요 거점이자 현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을 정복함

이 때 유럽연합군 10만명 전멸됨. 단 한 명도 살려보내지 않았음.


허나 승승장구하던 몽골군은 도나우강이란 인간이 아닌 자연장애물을 만나 아쉽게도 여덟달 동안이나 정복이 지연됨.

1242년 1월 다행히 얼음이 얼자 도하하여 단숨에 헝가리왕국을 멸망시키고 신성로마제국으로 진격함.(이미 도망친 상태)

몽골의 정복군은 로마의 여러도시들을 정복하고 코르노부르크까지 도달하였다.


1242년 오고타이의 아들 구육이 말하길 

"이 땅엔 오직 미개한 것들뿐이라 더 이상 정복할 가치가 없다!"

며 서유럽 정복을 반대하고 독일,이탈리아근처에서 아버지 오고타이의 최종명령을 기다리다 오고타이의 서거소식을 접하고 철군함.


동년 오고타이의 갑작스럼 서거소식과 후계자 다툼문제로 바투의 군대는 마지막으로 유고슬라비아를 복속시키고 유럽에서 철군함.


이로서 유럽정복군 몽골기병들이 모두 유럽에서 철수함.

피난민으로 넘쳐나던 유럽 나머지 살아남은 나라들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짐.


당시의 유럽은 기마병이 대량으로 있지도 않았고,

궁기병은 아예 생각치도 못해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활은 몽골기병의 활에 비할 바가 못되는 수준이었다.


몽골의 유럽정복을 두고 당시의 유럽인들은 

'신(神)이 내린 형벌이다'라고까지 했다.


당시의 유럽은 정말 타락했었다. 지금보다 더!!

당시 유럼인들은 자신들이 타락한 인간들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타락한 자신들을 응징하기 위해 신이 보낸 천사의 군대를 몽골기병으로 부른 것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몽골의 유럽 기독교정벌로 인해 서양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문화가 꽃피우고 철학이 다시 살아났으며 죽음과 삶을 소재로 한 수 많은 시와 그림 작품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다윈의 진화론이 서양문화로 정착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몽골의 정복이 부른 피의 역사가 유럽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오직 자신 몽골인의 힘만으로 전세계의 반을 정복한 정복자!

정복의 과정에서 수 많은 민족에서 투항한 이민족들을 능력별로 대우한 관대자!


신(神)이 된 영웅(英雄) 징기스칸 테무친 철목진 


징기스칸의 위업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지 못하고 있다.

일루미나티가 지금 깨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인과응보로 되돌아갈 것이다.


眞風流士 破天荒 姜錫泰 記